솔솔이네 여행이야기

삼척 척주동해비, 죽서루, 너와집과 굴피집, 환선굴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도착한 곳은 삼척시내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폿 앉아있는 육향산.. 그 위에 있는 척주동해비이다.

계단으로 오르다보니 산중턱 즈음에 삼척으로 부임되어 지냈던 사람들의 송덕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비석 머리에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한 녀석은 태양같다고 하고 한 녀석은 파도같다하고, 아이들 그림같은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곧 이어 녀석들을 사로 잡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니 바로 시끄럽게 느껴질 만치 울어대는 매미소리다. 매미가 어찌나 많은지 아마도 삼척 시내에 있는 매미가 모두 다 이 동산의 나무로 옮겨 온 듯.. 최근 도심의 나무들에서 유난히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하지 않는가.. 하여간 한 나무당 붙어있는 매미수가 족히 너댓마리는 된다.

일단 계속 올라서니 전각 안에 있는 척주동해비가 보인다. 이 곳 삼척의 옛 이름이 바로 척주(陟州)이며 이 동해비는 조선 현종때 미수 허목이 부사로 부임하여 있던 중에 심한 폭풍과 파도로 인해 마을이 피해를 입자 동해를 예찬하는 노래를 짓고 비를 세웠는데 그 후로 물결이 잠잠해 졌다는 것이다. 참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 후부터 이 비석이 풍랑을 잠재우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가져온다는 믿음으로 집집마다 이 것을 탁본해서 가지고 있을 정도였단다. 허목의 글씨는 유명하지만 특히나 아름다우면서도 힘이 있는 그의 전서체 글씨는 전서를 잘 모르는 이도 감탄할 만치 힘과 균형미가 있다. 전각의 비석을 감싼 나무울타리만 아니었음 제대로 글씨를 감상하련만 사이로 보자니 조금 갑갑하다.

주변의 전망을 바라볼 새도 없이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아이들은 이 나무 저 나무로 매달리니 제 아빠가 한 마리씩 잡아 마침 가져갔던 곤충 채집통에 담고 애들은 매미를 살펴보느라 신이 났다. 암놈 숫놈..배가 울리는 곳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저 손에 잡고 좋다고 난리다. 이럴땐 곤충 제대로 못 잡는 나는 완전히 찬밥신세... 제 아빠의 인기가 마구 올라가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의기양양하게 매미를 쥐고 내려온다.

다음 역시 삼척 시내에 있는 죽서루로 향했다. 입구에서 표를 끊고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하늘을 머리에 인 죽서루의 수려한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보니 누각이 서 있는 땅은 거의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바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누각의 기둥은 모두 제각각 길이가 다르다. 그런 경우야 간혹 보긴 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각각의 기둥을 받친 바윗돌 면의 굴곡까지 조금도 변형시키지 않도록 바위면에 맞게 기둥을 도려내듯 맞춘 것이다. 전체 기둥이 다 그러하니 어느하나 길이와 모양이 같은 것이 없다. 과연 우리네 선조들의 자연관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승훈의 제왕운기에 죽서루에 대한 시가 있다고 하니 고려때 즈음으로 본단다. 곳곳에 송강, 율곡, 허목 , 이규헌, 그리고 숙종의 어제시 등 많은 서액 들이 남아있으니 아마도 이 곳 누마루에 앉으면 저절로 일필휘지를 하고 싶을 만치 그 절경이 뛰어난 곳이었던 가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죽서루에 대해 '절벽이 천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듯한 루를 지었는데 아래로 오십천에 임하였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까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서 영동의 절경'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누마루 위에 올라서니 강건너 아파트며 빌딩이 보이지만, 아래로 굽이돌며 흘러내려가는 물줄기는 변함없이 오랜 세월을 죽서루와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도심거리에 이어진 죽서루 입구에서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니 그 옛날 죽서루의 정취는 어떠했을지..

늦은 아침을 죽서루 앞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마지막 코스인 환선굴로 향했다. 삼척에서 태백으로 난 38번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산허리로 골짜기로 굽이 굽이 들어가므로 이리봐도 산이고 저리봐도 산이었다. 물론 도로는 근처 주차장까지 잘 닦여 있다. 헌데.. 서울에서 관광열차를 운행할 만큼 찾는 이들도 많고 유명세를 타서인지 차를 주차시키기 위해서 한참을 길게 늘어 서서 기다려야 했다. 운좋게 관람후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생각보다 빨리 주차를 하고 보니 주차장 바로 위에 강원도 산지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과 굴피집이 전시되어 있다. 와우.. 잘되었다 싶어 냉큼 들어가 보았다.

너와집은 알다시피 소나무판자를 잘라 기와대신 올린 것으로 나무가 많고 추운 산지의 특성에 따라 전체가 나무로 지어졌고 집이 외양간 부엌 방 마루 창고..등이 모두 한 공간에 있어 아마도 가급적 외부로 열을 덜 뺏기도록 지은 듯 싶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에 낮은 외양간과 그 위로 창고처럼 허드렛물건들이 올라가는 다락같은 구조가 있고 다른 쪽으로는 부엌이 있고.. 사람이 기거하는 마루와 방은 껑충하니 높아서 그냥 서서 있으면 웬만한 남자어른의 허리께까지 온다. 산지에서 사용하는 온갖 도구들이며 특히 산길에 눈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는 억새로 만든 커다란 '설피'가 눈에 띈다. 또한 처음 본 것으로 각 방안에 마치 서양의 패치카처럼 쓰이는 흙으로 지은 벽난로(코콜)가 구석에 붙어있어 매우 흥미로왔다. 지붕은 나무로 켜켜이 올리고 그 아래에 공간을 두었으며 안동민속마을의 초가 까치지붕집처럼, 까치구멍이 뚫려있다. 굴피집도 역시 너와집과 비슷한데 다만 지붕을 참나무껍질로 올린 것으로 내부구조는 비슷하다.

뜻밖에 좋은 볼거리를 구경하고 이어 환선굴로 이어진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왼편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많은 비에 흙탕물이 되어 뽀얀 물안개 를 피우며 우당탕탕 굽이쳐 흘러내려간다. 곳곳에 통방아가 놓여있어 심심치 않게 구경하며 오르고, 강원도 아니랄까봐 손에손에 들고가는 옥수수..

환선굴은 생각보다 많이 올라가야 했다. 가파른 길을 오르자니 땀에 온 몸이 흠뻑 젖고 다리도 아픈데 선녀폭포라는 곳에 이르자 갑자기 시원해 지더니 온몸이 떨릴 정도.. 땀이 다 식어버린다. 환선굴 입구로 가니 내부 구조를 그려놓은 자세한 안내문이 있다. 이 석회암동굴은 삼척의 동굴지대의 일부로 현재 공개된 부분만 해도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큰데 보존을 위해 비공개된 부분도 매우 방대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살아있는 동굴' 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데 단지 진행형이라서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이 아주 많아서 박쥐, 노래기, 옆새우, 진강도리등의 특이한 생물들이 비공개된 동굴로 숨어들어가 살고 있으며 특히나 옆새우 같은 지상에서는 이미 멸종된 종류 의 생물들도 있다는 것이다.

입구부터 싸늘한 공기가 나와 땀으로 흠뻑 젖은 우리는 추위를 느끼며 동굴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안인데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고 이윽고 들어선 너른 광장이 이어진 철제구조물에 달린 불빛들로 환하게 보인다. 계단으로 오르고 내리고 까마득한 절벽위의 다리도 지나면서 다 보고 나오기까지 거의 두시간이 걸리는 거대한 동굴이다. 무척 다양한 종류의 석순과 유석들이 곳곳에 있고 , 동굴모양의 특성에 맞게 지옥의 다리니 선녀폭포니 무지개다리니 등의 조형물들을 곁들여 놓아 마치 귀신의 집을 통과하는 것 같은 짜릿함 마저 느껴진다. 머리 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가 하면 동굴안에 웬 계곡이며 폭포가 몇 개씩 있어 물살도 세고 물이 깊기에 자칫 아이들이 미끄러질까봐 조심을 하게 된다. 석회암이 녹아 내려 희뿌연 석회수가 고이는가 하면 다시 너른 석순을 만들기도 하고 공중에 하트모양의 구멍을 만들어 연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으로 통하는 곳도 있다. 성모마리아상이라는 곳에서 몸을 구부리고 보니 정말 두손을 모은 자그마한 성모마리가가 서 있는 것 같다.

자그마치 5억 3천년전에 생성된 석회암층.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최근에 동굴로 발견되면서 이 곳 깊은 땅속에 갑작스레 엄청난 조명과 철제구조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조용했던 동굴이 시끌벅적해 졌으니 박쥐니 생물들이 모두 숨거나 사람이 닿지않는 비공개 동굴로 숨어들어 가고 있다는 것. 또 물론 멋있는 장치와 구조물들이 있음으로 해서 전설만큼이나 신비한 동굴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기 편하고 짜릿하고 재미도 있긴 하겠지만, 반복되는 마이크 소음과 감시카메라들 반짝이는 불빛들이 자칫 동굴의 참맛을 놓치게 하는 건 아닐지.. 오전에 들린 그 죽서루의 기둥에 나타나있던 선조들의 자연관과는 판이한 현대식 관광화의 일면을 느낄 수 있다.

산을 내려오자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쉬고 싶었으나 집에 돌아갈 길이 워낙 멀고 먼지라 점심도 나중으로 미루고 무조건 차에 올라 내쳐 삼척에서 바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대관령까지는 무사히 잘 갔고 비도 그럭저럭 오지 않았건만 워낙 막히기로 유명한 영동고속도로는 토요일임에도 원주에 못미쳐서부터 계속 막히기 시작,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엄청나게 밀리다 달리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서울 톨게이트를 들어서니 밤 9시 . 삼척에서부터 약7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장장 5박6일의 답사여행. 일정이 늦어져 탈춤을 놓치거나 도산서원을 주마간산식으로 자세히 보질 못한점 등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특별히 예상치 않았던 문화재를 발견한다든지 우중 답사라는 색다른 노하우를 추가했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모두가 건강한 덕에 또 이렇게 다닐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하리라.

(1998. 8.15 )

환선굴: 열차는 청량리·부산·동대구에서 삼척 가는 편이 있고, 서울 강남과 동서울터미널에서 삼척행 고속버스가 있다. 승용차는 영동고 속도로나 7번 국도를 타면 삼척에 닿고 삼척에서 태백으로 난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대이리까지 20여분정도. 대이리행 시내버스가 삼척시내에서 매시간마다 있다.

관람료어른 3천3백원, 학생 2천2백원. 떠나기 전에 동국동굴탐험연구회(02-278-9803), 동굴탐험가 최용근(02-470-2844)씨, 두레생태기행(02-712-5812∼3)으로 연락하면 자세한 안내자료를 얻을 수 있고, 삼척시청(0397-72-3544)이나 동굴관리사무소(0397-70-3255)로 연락하면 도움을 얻을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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