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 별신굿, 놋다리밟기, 선유줄불놀이
여름에 안동에 다녀온 이후로 내내 각종 탈들이 눈에 어른 거리고 실제로 보고싶다는 생각을 갖던 중 마침 각 지방의 탈놀이들이며 민속놀이 그리고 외국의 탈춤 , 무속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발'이 있다고 하니 이런저런 일들이 있긴 했지만 큰 아이와 함께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청량리 역에 도착, 중앙선을 타고 안동으로 향했다.
중앙선 기차는 한 두번 타 본 기억이 나기는 해도 오래전의 일이라 창 밖의 풍경이 낯설고 새롭다. 굴도 많고, 산과 절벽
강물.. 기차를 타고 가노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좋다. 일상에서 생각을 오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주어진 4시간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하회별신굿에 안내문을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잠깐 나누고는 이내 가져온 책을 들여다보며 독서삼매경에 빠진 큰 아이도 내 시간을
갖게 해주니 고맙다.
왜 안동에 가는가.. 프린트해간 일정표에 꼭 보고싶은 것들을 표시하면서 , 지금은 이렇게 일정한 때, 일정한 장소에 찾아가 볼
수밖에 없지만 예전에는 생활과 함께 어우러지며 있었을 탈놀이들을 보고 싶었다는 것. 그 외에는 별다른 욕심없이 가자고 마음먹어
보았다.
안동역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1시를 넘겼고 현지에 사는 친구의 도움으로 낙동강변의 본 행사장까지 갔더니 동래들놀음은 늦어서 입장이 안되고 별 수없이 다음 하회별신굿이 시작될때까지 아이와 둘이서 행사장을 둘러보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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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이라고 하면 우리세대는 흔히 저항문화, 민중의 표현을 떠올린다. 탈놀이에서 양반은 자주 웃음거리의 대상이 되고 가면을 쓴채
온갖 소리 다해가며 놀려대는 하인에게도 현실에서처럼 하지 못하고 그저 허허 거린다든지 퉁을 놓는 정도로 마는 것이 탈판에서의
관행이다. 때로는 양반의 이중성을 성적인 농담과 표현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즉석에서 상황에 맞는 대사를 넣어가며 관객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이윽고 탈판이 끝날 무렵이면 모두가 어울려 질펀하게 한바탕 놀이를 함으로써 고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더불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굿을 마감하곤 한다.
그 중 안동의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고려때부터 내려온 하회탈 9점을 쓰고 하는 놀이로 표정과 주름이 그대로 살아있어 누구라도 탈을
보면 이내 줄거리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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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연장에 들어가니 원형의 관객석, 그리고 가운데에 무대가 있다. 각시를 무동태워주는 무동마당을 필두로 탈놀이가 시작되었다.
이어 주지탈을 쓴 사자가 탈판을 정화하고 세번째 백정마당에서는 백정이 소를 잡아 염통과 우랑(불알)을 떼어내 관중을 향해 휘두르며
"사실분 안계시니껴.. 양기를 북돋우니더.." 해가면서 금기시 되었던 성에 대한 표현을 서슴없이 해댄다. 그래서 동시에 관중은
긴장을 풀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아..여기서 이 경북의 사투리가 너무나 반갑고 정겨웠다. 결혼해서 처음 시댁에 가면 늘상
무슨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해서 괴롭던 그 사투리가 이제 이렇게 정겹게 느껴지고 익숙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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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소가 나오면서 관중석으로 한바퀴 도는데 이때의 하는 짓거리가 여간 재미 있는게 아니다. 뒷다리를 들고 소가 오줌을
누는 것처럼 물주머니 같은 것을 쏘아 관중에게 뿌려대니 양반님네가 보면 어찌 방정맞고 불경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한바탕 관객의
흥을 돋운 그 즈음에 아뿔싸..
갑자기 방송으로 영부인이 오셨다는 안내가 나오더니 탈놀이가 중지되고 검은 안경을 쓴 경호원들이 들어오고 이어서 놋다리밟기를 하게
될 공주와 한복입은 여자들이 주르르 .. 영부인이 무대로 올라가고 양쪽 입구에서부터 놋다리를 만들고 그 위로 두 명의 공주가
각각 하회탈과 꽃다발을 안고 걸어 다가와서는 영부인에게 증정.. 이어서 기립박수.. 그리고 10여분의 연설. 영부인에 대한 예의는
알겠지만 그 바람에 그만 탈판재미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어서 할미마당과 양반선비가 초랭이와 백정으로부터 망신을 당하는 장면을
하고는 일곱 여덟째 마당은 그즈음에서 생략이 되었다. 시간상 그러했는지 아니면 원래 그만큼만 하려던 것인지는 몰라도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관중들에게 하회탈놀이를 선보이는 자리인데 꼭 중간에 그렇게 해야만 했을지 하는 불쾌감이 들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현실에 맞는 얘기들을 풍자하는게 제 맛이 아닌가하는 바람은 지나친 것일까. 여전히 보여지는 문화재로 존재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1시간 내에 보여지는 별신굿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을 터.. 언젠가는 전 마당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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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공터에서는 저전논매기 시연이 있어 '쾌지나 칭칭나네'의 후렴에 맞추어 마을사람들이 공동체가 되어 호미를 들고 논을매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곧 이어 놋다리 밟기.
고려 공민왕때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왕과 비속이 안동으로 내려왔을 때 노국공주가 내를 건너도록 부녀자들이 엎드렸다는 데서 유래한
안동지방의 놀이인데, 고창 모양성제때도 그랬듯 여기서도 여고생들이 대거 참여하여 놋다리밟기를 재현하고 있었다. 모두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일렬로 늘어섰다가 둥글게 돌면서 원을 그리더니 이내 엎드리고, 화려한 궁중의상 을 입은 공주역의 두 사람이 엎드린
이들의 등을 밟으면서 중앙으로 다가 서는 모양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지역축제가 살아 숨쉬려면 아무쪼록 함께 어울리고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문화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 나서서
참여하지 않으면 단지 보여지는 문화로 정형화되어버리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에게서 외면 당하고 말 테니까. 그런 점에서 학생들의
단체 참여는 참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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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다리밟기를 하는 공터 한편에서는 또 다른 여러가지 무속공연과 탈춤따라 배우기 , 탈공방, 먹거리등 수많은 천막들이 줄지어 있었고
, 칼도사라는 사람의 칼타기도 시연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친구 가족과 함께 만나 안동댐 근처에 있는 민속마을 내에서 차비빔밥과 동동주를 시켰는데 직접 담는 동동주맛이라 그런지 '곡차'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걸죽하고 달짝지근한 그런 맛인지라 마셔버리기 아까울 정도였다.
드디어 저녁에 하는 선유줄불놀이를 보러 가기 위해 하회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도착해서 어둠을 뚫고 부용대가 바라다보이는 만송정
앞, 낙동강변 으로 더듬어서 걸어가니 이미 시작했는지 부용대 꼭대기에서부터 이쪽 강건너로 이어내려진 대여섯개의 줄에.. 줄줄이
매달린 불꽃들의 특이한 내음이 가슴에 쏙 들어온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트리에서 늘어뜨려진 반짝이는 줄과 같은 형태로 내려온 길디
긴 줄에 달린 불꽃들. 알고보니 닥나무 재와 껍질로 만들어진 얇은 방망이 같은 것으로 화약불꽃처럼 강하거나 튀지 않고 은은하게
타면서 줄에 매달려 흔들흔들 춤을 춘다.
강물 위에는 많은 불꽃을 띄워놓고, 돛을 단 배가 한 척 떠 있는데 그 위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허옇게 보이는 한복을 입은 세
여인이 춤을 추니 가히 자연을 벗삼아 즐길 줄 아는 조상님네의 멋과 풍류에 감탄하게 된다. 하회마을에서의 탈놀이가 기층민중의
놀이였다면 이 선유줄불놀이는 양반층의 특별한 밤뱃놀이였을 터이다. 부용대 위에서는 이쪽 사람들이 한가지씩 기원을 하고 '낙화야~'하고
외칠때마다 타는 불덩어리를 떨어뜨려 사람들의 환성을 자아냈는데 과연 이런 것도 예전부터 있던 것인지 아니면 내려오면서 놀이에
추가된 것인지.. 물론 놀이방법이야 시대에 맞게 변화 발전되는 것이 진정한 놀이일테지만 선유줄불놀이의 유래를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해학과 풍자 그리고 풍류가 어우러진 안동의 밤.. 이 곳 하회마을에서 아이들은 아까의 그 불꽃봉들을 가지고 노느라 온통 얼굴이며 손이며 숯검둥이가 된 채로 이번엔 강변의 모래를 온통 뒤집어쓰고 뒹굴면서 놀고 있고, 어른들은 오랫만에 만난 즐거움으로 들큰한 동동주를 마시며 안동에 대한 이야기, 축제에 대한 견해들을 이야기하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 곳에 가든 그 지역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시야를 한 폭 더 넓히는 계기가 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안동에 대한 진한 관심과 애정이 오늘의 고집스러운 안동, 전통을 고수하는 안동, 그래서 그 전통을 매개로 국제적인 잔치를 벌일 수 있는 현재의 안동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이런 잔치가 안동사람 개개인에게 당장의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 안동인이 주체가 되는 행사를 치뤄냄을 통해 오히려 그 이상의 문화적 자부심과 독특한 우리만의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가치는 이미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다.
'외부에서 안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라든가, '안동의 미래를 어떤 방향 으로 잡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묻는 사람들에게서 물씬 안동의 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
(1998.09.26 )
| 중앙선 기차를 타고 안동역에서 내린다. 주 행사장은 역에서 나와 오른편으로 낙동강을 향해 가다가 다시 강변인 오른쪽으로
꺾어져 백여미터 가도 되고 역에서 왼편으로 가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왼편 천리고가교로 올라 직진하면 바로 주차장과 행사장이
나온다. 아이들과 걷기에는 조금 멀다. 하회마을까지 가는 46번버스는 시외버스 터미널 맞은편에 선다. 축제기간중에는 행사주차장 옆 정류장에서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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