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의 아침, 북청사자놀이, 기천무, 봉산탈춤, 차전놀이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변, 가장 가까운 민박집에서 방 두개를 얻었는데 자다보니 한쪽 방은 지글지글 끓고 우리가 자던 방은 냉골이어서
두세번 잠을 깨다보니 아침이 되었다. 따스한 방으로 옮겨놓은 아이들은 잠에 빠져 있고 나와 한 친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마시며
강가로 내려갔다.
마을이고.. 솔숲이고.. 강변이고..어디든 새벽 안개에 휩싸여 있어 뭐 하나 뚜렷이 보이지 않으며, 어젯밤 화려한 줄불놀이가
언제 있었냐는 듯 강물은 흔적도 없이 뿌연 안개로 덮여있다. 온통 신비스러운 느낌을 받으며 실컷 안개를 마시고 나니 간밤에 이런저런
얘기끝에 마신 술로 띵하던 머리가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맑고 투명한 기분.. 그리고 물돌이동 하회마을의 신비스럽기까지 한
안개 덕에 푸석푸석하고 세수도 안한 얼굴이지만 적당히 안개가 가려주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겠다.. 내쳐 친구와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만송정에서 흰 저고리와 검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날듯 칠듯 춤사위로 안개를 흩어내며 연습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무엇일까 ..지나면서
호기심에 눈을 떼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바로 '기천무' 이다. 그것에 대한 감동은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지난 여름 그 폭우를 맞아가며 다녔던 하회마을.. 친구와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다 보니 그 느낌이 또 다르다. 벗도 그렇고 마을도 그렇고 친숙해서일까.. 그냥 편하고 내 동네라도 된 듯 부담이 없다. 충효당 양진당 류시주 가옥 초가집, 기와를 얹은 나즈막한 담장 , 폭우로 부서진 흙담장도 보인다. 여전히 눈 앞에는 안개가 깔리고 찬 기운 때문인지 물방울마저 가까이 떠다닌다. 영화속 한 장면이다. 하동에서의 새벽강 안개가 그렇게 좋더니 이 곳은 신선이 사는 곳처럼 그렇게 신비스러운 안개가 가득하다. 유난히 새벽강이 좋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한시간 남짓 걸려 안동 시내의 본 행사장에 도착했다. 주 공연장으로 가니 벌써 북청사자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황해도 북청의 놀이가 이제는 지역을 떠나와서 이렇게 공연장에서나마 볼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랄까.. 과연 이북에서도 이 탈놀이가 전수되고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을까..잠시 궁금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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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사자는 오색실로 사자의 털을 꾸미고 크고 둥글넙적한 가면에 입은 따로 벌렸다 오므렸다 할 수 있게 하여 실감나게 느껴진다.
장난감 토끼 인형을 던지고 서로 잡으며 두 마리의 사자가 뛰어노는 모습이 재미있어서인지 아이들도 시선 집중이다. 탈판은 언제나
관객과 어우러지기 마련이라 급기야 사자 두마리가 입을 쩍쩍 벌리며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마치 잡아먹을 듯 입을 벌리고 다
같이 소리지르며 한바탕 웃는다. 사자 한마리가 아픈 듯 누워있더니 이내 한의사의 침을 맞고 다시 두 발을 높이 치켜들며 놀기
시작하고 놀잇군 전체가 나와 빙글빙글 돌면서 사자를 축하해 준다. 이어서 모든 관객이 나와서 어깨춤을 들썩이며 놀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순서. 어제 별신굿 때와는 달리 제법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기에 아이들이랑 같이 나가서 어울려 보았다.
애들은 생각보다 재미있어 한다. 오히려 낯설어 하는 건 언제나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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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순서가 일본탈춤. 일본의 시바 라는 춤인데 신을 모시는 의식으로 춤과 탈과 일본도가 등장하여 악귀와 구렁이를 물리친다는
내용인데 그 음악이 어찌나 단조롭고 질질 끄는지 일행이 모두 몸을 비비꼬고 , 우리탈놀이에서의 흥겨움이나 관객과의 어우러짐 같은
것이 없으니 체질에 안 맞는 것일까.. 다만, 그 공연을 하고 있는 일본인중에 무척 나이가 많아보이시는 분들이 땀흘리며 하고
있는 데 일어나 나가기가 미안스러워 끝까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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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탈춤이 끝나고 바로 그 '기천무'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보았던 그 의복의 사람들이 들어와 가운데 무대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첫 품새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음악이 낮게 깔리고 사범?의 낭독을 듣자니 온 몸에 전기가 오듯 찌르르 한 감동.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우리 민족의 맥을 잇고 면면이 살아 .. 중략.. 일어나라.. 기천무여.. 껍데기를 벗고 모두가 하나되는 날까지..
' 등등. 부드러우면서도 절도가 있고 날카로운 듯 하면서도 장중한 그런 느낌의 무예였다. 맨몸으로 하기도 하고 목검이나 칼로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너무 멋져서 배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었는데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 아들네미가 거의 홀린
듯 배고픔도 잊고 바라보았고 온 관객이 다 빨려드는 듯한 것이었으니 가히 우리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택견이 여유와 부드러움 속에 숨겨진 힘이 보인다면 기천무는 무술풍에 가까운 매서움을 부드러운 춤사위로 위장한 듯한 그런 힘이
매력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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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바로 유명짜한 봉산탈춤. 시간이 늦어 봉산탈춤은 두 마당까지 보다가 얼쑤~ 낙양동천 이화정~ 한두번 외쳐보다 나왔다.
많이 봤던 탈춤인지라 그나마 다행. 점심을 근처에서 떼우고 드디어 차전놀이하는 곳으로 간다.
차전놀이는 후백제의 견훤과 왕건이 안동에서 싸움을 했던 것을 기화로 시작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이 놀이로 이어져 지방마다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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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도 역시 남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짚신을 신고 청백으로 나뉘어 틀 위에 올라선 적장을 먼저 쓰러뜨리면 이기는 것이라
고함을 치며 뱅뱅 돌기도 하고 우두머리를 높이 들었다 놨다 하는 둥 실갱이를 한다. 결국 한쪽 우두머리가 땅에 떨어지니 이번에는
진 팀이 짚신짝을 던지고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하는 것이다. 그 모양이 어찌나 우습던지 우리네 놀이에 깃든 해학은 늘 내 허를
찌르는 듯 하다.
기차시간까지 알차게 관람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더 보고싶고, 그래서 아들과 나는 내년에 또 오자는 의견의 합치를 보았다.
1998.09.27
http://solsol.pe.kr [해솔이와 한솔이네 집]